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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4일 차 동쪽으로 동선을 잡았던 김에 제주의 명물 성산일출봉에 들렀다.
이번 방문으로 이전에 몇 번씩 방문했을 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제주 성산 일출봉은 우리나라에서 단 2개밖에 없는 세계 자연유산이었다.
대한민국의 세계 자연유산은 다음과 같은데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명목으로
한라산,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이 묶여있고
'한국의 갯벌'이라는 명목으로
충남 서천군, 전북 고창군, 전남 신안군, 전남 보성-순천의 갯벌이 묶여있다.
세계 자연 유산 등재 기준은 자연적, 생태학적, 생물학적 가치가
뛰어난 곳에만 부여되는데 물론 인간의 기준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225개 밖에 없는 세계인의 자연유산이다.
그중 하나가 성산일출봉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이번 방문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성산 일출봉이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이라고 이렇게 떡하니 써져 있는데 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올랐었을까. 생각해 보면 외국인이 많은 이유가 설명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적,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이곳을 제주에 왔는데 안 와볼 리가 없다.
우리는 아주 운이 좋게 제주 국가유산방문의 해 선포주간이어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는데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해설사님께 아주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는데 후에 설명하겠지만 다음 행선지와 바로 연결이 된다.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성산은 '거룩한 산'이 아니고 '마치 성과 같다고 하여 성산'이며 후에 해돋이가 유명하여 '일출봉'이라는 명칭이 덧붙었다고 한다.
제주 성산일출봉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단성화산)과는 달리 유일한 수성화산인데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닷속에서 분출하며 만들어진 '수상화산'이다. 이는 매우 희귀한 지질학적 사례로 무려 하와이 오아후섬의 다이아몬드 헤드 산과 유사하며 퇴적면을 연구하면 수성화산의 분출 및 퇴적과정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여 세계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대부분의 수성화산은 바다에 의해 침식되어 길어도 몇백 년에 거쳐서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성산일출봉은 침식사면을(비탈면이 빗물, 유수, 바람, 파도, 눈, 빙하 등으로 침식되는 것) 제외하고는 수천 년간 침식되지 않고 온전한 형태를 보존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높다고 한다.
또 방문이 쉬운 관광지가 된 이유는 성산일출봉 생성 당시 제주도 본토와 약 1km 떨어진 화산섬이었으나 침식작용으로 바다에 운반된 화산재와 화산력(화산재보다는 크나 64mm보다는 작은 입자)이 퇴적되어 사주(모래사장)가 발달했고 그 위에 1940년 도로를 놓아 육지와 완전히 이어지게 되었다.
제주 성산일출봉 관광지로서의 가치
세계 문화유산 중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주목할 만 하지만 이번에 오르고 내려보니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사실인데 탐방로가 오르는 길, 내려가는 길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 위험하지 않고 사람이 생각보다 붐비지 않는다. 아주 좋은 설계로 잘 구성이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오르다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국인들이 참 많은데 자타공인 제주의 유명하고 가치있는 관광지임을 증명한다.
한국신화와 고려 삼별초
중간쯤 오르다보면 '전설이 깃든 바위이므로 관람에 지장을 주는 행위를 삼가시오'라고 적혀있는 '등경돌(징경돌)' 바위가 나오는데 옛 주민들은 이 바위를 지날 때 네 번 절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두 번의 절은 제주섬을 창조한 아름다운 여신인 '설문대할망'에 대한 것이었고 다음 두 번의 절은 고려말 원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바친 김통정 장군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퍼 날라 섬을 만들고 밤에는 이 바위 위에 등잔을 올려놓고 흙 때문에 헤진 치마폭을 바느질했다고 하는데 등잔이 낮아 이 바위를 높고 등경돌로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다.
또 고려 원종 12년(1271년) 여몽연합군의 공세에 대비해 성산에 토성을 쌓아(아직 그 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나라를 지켰던 고려 삼별초 김통정 장군이 이 등경돌 아래에 앉아 바다를 응시하고 때로는 바위 위로 뛰어오르며 심신을 단련했다고 하는데 발자국 모양으로 파인 것이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제주 4.3 사건
1943년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2년에 걸쳐 절벽에 24개의 굴을 파 요새화하였으나 1945년 결국 패전하여 사용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굴의 크기는 높이 3-5m 넓이 3m 길이 10-50m 정도, 입구 서너 개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로 통하는 굴도 있다고 한다. 굴을 뚫을 때 일제의 수탈이 너무 가혹해 성산리 주민들 일부는 다른 마을로 이주했다고도 한다.
이후 해녀들의 탈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2006년 국가등록문화제 제31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현재는 '송악산' '알뜨르비행장'등과 함께 '다크 투어리즘' 중 한 곳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불법 침입하지는 말자)
그리고 제주 4.3 사건 당시 성산일출봉 주변 터진목과(육지와 이어지는 사주/모래사장) 우뭇개(성산일출봉을 바라보고 왼쪽 아래 해안) 일대에서 당시 고성리와 오조리 마을 청년과 주민 100여 명의 민간인이 토벌대에게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고 한다.
짧은 등반 대비 놀라운 풍광과 일출
정상까지 약 20분이면 도달하는 짧은 코스 대비 놀라운 풍경을 제공합니다. 또한 명실상부 제주 최고의 일출 조망지로 저마다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계단형식의 나무데크가 조성되어 있다.
분화구에 우거진 풀밭은 옛날 인근 주민의 연료 및 초가지붕을 이는 띠를 만들 이 위한 채집장소였고 농사지 및 소나 말의 방목지로도 쓰여 화전을 했기 때문에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와 띠(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이루어진 풀들과 인위적으로 심었던 대나무 군락만 남았다고 한다.(지금은 보호된다고 하지만 결국 인간이 문제다)
내려오는 길에는 성산읍 일대를 넓게 조망할 수 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참 볼만하다. 자연적으로 본섬과 이어진 것이 성산일출봉을 쉽게 탐방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지 않은가 싶다.
*정상에는 한국어 해설사가 로테이션으로 상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오전 9시-오후3시30분까지(점심시간 12시-1시)
제주를 위해 무료로 봉사하시는 분들이니 예의를 갖추시기 바랍니다.
정상에서 만난 해설사님께 들으니 봉우리는 99개인데 100개였으면 제주도에도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가 날 것인데 하나가 모자라 호랑이나 사자가 없다는 전설도 있고 성스러운 산이 아니라 성산이라는 점 본섬과 퇴적으로 간조 때 이어졌지만 사람들이 흙을 퍼다 날랐다는 점 단성화산이 아닌 수성화산이라는 점 앞서 이야기 한 대부분의 것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우리 부부가 방문했던 시점이 2024 세계유산축전 기간이어서 또 다른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 용암길이 1년에 단 한번 열리는 기간이라 가보시기를 권했는데 흥분을 금치 못하며 바로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아래 링크확인)
성산일출봉 방문 총평
성산일출봉은 이번으로 3번째 방문인데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그저 정상에서 일출시간에 맞춰 해를 보는데만 혈안이 되어 이곳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를 전혀 알지 못했었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 주변이 보이는 여유가 생겨서일까 성산일출봉의 다양한 이야기와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되어 좋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이곳은 식상한 관광지나 그저 성산에서 가볼 만한 곳이 아닌 세계인의 유산이며 한국인으로서도 살펴볼만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담겨있는 소중한 곳이다.
방문을 예정하고 계시다면 그저 오르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기를 권해드린다.